일본을 들었다 놨다 했던 개시대청 인삼무역 - 초량왜관 4편
개시대청은 관수가, 재판가와 함께 동관의 3대청이다. 관수가와 재판가가 각각 왜관의 행정과 외교의 중심이었다면 개시대청은 무역의 중심이었다. 매월 6회 조선과 일본의 상인들이 개시대청에 모여 교역을 했다. 당시 부산은 변방 중에 변방이었지만 무역만큼은 조선을 넘어 동북아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 변승업은 초량왜관에서 부를 모았을 정도였다. 왜관 무역을 독점한 대마도의 1691년 사무역 거래표엔 조선과의 무역으로 거둔 이윤이 3,577관(금 7만냥)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금 시세로 계산하면 약 1500억원 정도가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매출이 아니고 이윤이다. 조선은 사무역 금지를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왜관의 사무역은 허가했는데 1610년 영의정인 이덕형의 국왕에 대한 전언 속에 그 사..
부산옛날
2017. 7. 10.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