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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맥주 마실 때마다 날 짜증나게 하는 게 하나 있다. 

캔따개를 딸 때마다 손톱이 아픈 것이다. 손톱으로 따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손가락은 들어가지 않고 손톱에만 걸렸다. 할 수 없어서 끌어올리면 손톱에 걸리는 병따개의 압력이 온몸에 전해져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엇그제 캔맨주를 따는데 손톱의 압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따개가 자연스럽게 손끝에 걸리더니 캔뚜껑이 팟하고 열렸다. '손톱이 아프지 않고도 딸 수 있는 캔맥주가 있구나.' 이날 내가 산 맥주는 국산 맥주가 아닌 일본 아사히맥주였다. 


국산맥주는 왜 손톱이 아플까? 

손톱이 아프지 않고서도 따개를 딸 수 있다는 걸 알고서야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국산 캔맨주를 사서 따개 부분을 살펴봤다. 


 

OB맥주



먼저 OB맥주다. 따개에 손가락을 걸 수 있는 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손톱 끝을 지렛대로 걸칠 수 있을 정도인데 병따개의 모든 압력을 받아내는 손톱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카스



카스도 마찬가지다. 

같은 회사라 그런지 따개의 차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이트맥주


 

하이트는 홈이 좀 넓다. 

하지만 이것도 손톱에 걸리는 압력을 분산시키지 못한다. 

홈이 너무 얕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스나 오비보단 병따기가 조금 나았다. 


 

아사히맥주



이게 바로 내가 캔맥주 따개의 신세계를 느꼈던 일본 맥주 아사히다. 

홈이 넓고 깊다. 그러니 따개가 손톱이 아닌 손끝에 걸린다. 

손끝으로 따개를 들어올리니 전혀 아프지 않다. 


자세히 보면 미세한 차이가 또 있다. 아사히는 따개 끝이 반듯하다. 

반면 국산 캔맥주는 전부 둥글다. 

아시히의 따개 끝이 반듯한 것은 캔맥주 테두리와 따개 끝 부분 간의 거리를 보다 많이 확보해 손끝으로 따기 쉽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다.


캔맥주 딸 때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손톱으로 따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한 적 있다. 그런데 내 말에 호응해주는 사람은 별로 못봤다. 대개 그것도 못따냐는 핀잔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숟가락이나 나무 젓가락, 심지어 이빨로도 병을 따는 나라에서 캔맥주 따위로 불평하는 건 한심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땅에서 캔맥주로 소외감을 느껴왔다. 일본 맥주는 그런 내가 잘못된 게 아니란 걸 엇그제 밤 알려줬다. 내가 캔맥주를 못따는 것은 뚜껑 따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맥주회사의 뚜껑 만드는 기술이 형편없어서란 걸 일본 맥주 아사히가 보여줬다. 


한국 맥주 맛 없는 건 세상이 다 안다. 거기다 요즘은 소독약냄새(카스)까지 난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의 혀를 괴롭혀온 한국맥주가 양심이 있으면 손톱은 괴롭히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닐까? 그게 뭐 대단히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맛은 포기할테니 손톱만은 제발 살려주기 바란다.


 

아사히맥주, 「열기 쉬운 캔 뚜껑」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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