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관 동구청 앞 일대를 고관이라고 한다. 동구청 앞에 옛날에 왜관이 있었는데 화재가 많고 주거가 불편한 문제로 1678년 초량(현 용두산공원)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동구청 앞 왜관을 고관이라 불렀는데, 그 지명이 지금도 불리고 있는 것이다. 2. 해관로 부산 중부소방서에서 부산데파트 사이 바다를 따라 이어진 안쪽 길을 해관로라 부른다. 과거 이 길 끝(남포동 쪽)에 해관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해관은 지금의 세관과 같은 곳으로 그 앞은 100년 전 바다였다. 지도상 해관로 앞 부분은 이후 매립되었다. 3. 새마당 예전에는 중앙동 일대를 '새마당'이라고 불렀다. 새마당은 '새로 생긴 넓은 땅'이란 뜻인데 그 자리가 바다였던 곳을 매축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4. 기찰 금정구 부곡동의 다른 별칭으로 ..
1. 수비삼거리에서 ‘수비’ 란 무엇의 줄임말인가? : 수영비행장 2. '조방앞'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 조선방직 3. 부전시장 앞의 '삼전 사거리' 는 '전'자가 붙은 동이름 3곳을 따서 지었는데 이들 세군데의 동네 이름은? : 전포, 부전, 범전 4. 세 사람의 공통점은? : 부산 혜광고 출신 5. '애살'이란 부산사투리의 뜻을 쓰시오. : 주로 여자들에게 쓰는데 '맡은 일을 잘하고자 하는 욕심과 애착이 있는 상태'라는 게 대략적인 의미. 6. 부산여자가 말하는 '오빠'와 '오빠야'의 차이를 말하시오. : '오빠'는 애인 또는 좋아하는 남자. '오빠야'는 그냥 친 오빠.
건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초량왜관에서 그나마 가장 뚜렸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 바로 관수가다. 관수가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계단뿐 아니라 계단 위 지적도에서도 그 흔적이 확인이 된다. 관수가 터의 현재 건물들은 관수가 돌담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고 그 뒤 봉수대로 올라가는 계단(B지점)도 관수가 시대부터 있었던 계단이다. 관수가는 전문적인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도 그 흔적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관수가 위치를 찍은 사진이 구한말부터 일제시대까지 꽤 남아있어 그런 건데 계단을 기준으로 사진들을 살펴보면 건물들과 주변 모양이 조금 바뀌었을뿐 관수가 터는 그 형태가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관수가 위치가 사진으로 많이 남은 것은 이후 그 곳에 관청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일본은 초..
7월 6일 썰전에 첫 등장한 박형준 교수가 한미fta를 이명박 정부 시절 업적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한미fta는 이명박 정부의 업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많다. 한미fta가 재협상까지 거쳐 타결된 건 참여정부 때인 2007년 6월이다. 박형준 교수가 체결했다는 fta는 미국의 요구에 의한 추가적인 재협상이었다. 한미fta가 성공이라고 단언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성공이라해도 그 업적이 전부 이명박 정부의 몫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야당의 반대와 싸웠지만 참여정부는 지지자들의 반대와 싸우면서 한미fta를 밀어붙였다. 그 진정성이나 고충은 참여정부가 더 컸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협상한 건 미국의 요구에 의한 재협상이었다. 참여정부가 확보한 원안의 이익보다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참여정부보다..
"요 대목에서 했던 얘기는 절대 우리나라 유력 신문에 안납니다. 왜냐하면 첫번째 싸움이 아니고 두번째 설명이 복잡하고 세번째 노무현에게 유리한 것이기 때문에 안납니다." 2006년 12월 27일 부산에 온 노무현 대통령이 한 얘기다. 국가 재정 관련해서 말하다 이야기 막판에 북박친듯 터진 말이다. 참여정부 시절 언론들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했다. 노무현에 대한 공격은 진보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이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도 그런 언론들의 습관적이고 가학적인 노무현 공격을 꼬집은 유행이었다. 아래는 참여정부 당시 언론 상황에 대한 패러디물로. '다음날 조중동'으로 알려진 시리즈물이다. 보면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언론들의 공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다. 이걸 보면 일부 ..
"부산의 어르신들은 아직 기억합니다. 일명 '서독병원'이라 물리던 부산 서대신동의 독일 적십자 병원. " 문재인 대통령 독일 방문 중에 부산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1950년대 한국에서 의료 봉사한 독일 분들을 만났는데 그 분들이 활동을 한 곳이 바로 부산 서대신동의 '서독병원'이었다. 독일 적십자 병원은 독일(당시 서독)이 1954년 서대신동 옛 부산여고 자리에 세운 병원으로 1958년까지 각국 의료지원단 중 가장 오래 남아 부상병과 피란민들에게 의료봉사를 했다. 약 4년 7개월 동안 외래 환자 22만 7250명, 입원 환자 2만1562명을 치료했다고 한다. 106세 된 부산독일적십자 수간호사 수녀 독일의 對한국 의료구호 그 시절..베를린서 사진전 독일의 對한국 의료구호 그 시절..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