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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 초량왜관도 그림(국사편찬위원회)



이름도 고귀한 / 오륙에 비치는 / 달빛이여

동향의 종을 치는 / 신을 맞이하는 / 사람일세


이 시는 1806년 초량왜관에 머물렀던 오가와 지로우에몽이 지은 단가다. 지로우에몽은 8개월 동안 초량왜관 머물면서 175수의 시를 썼다. 지로우에몽이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달빛에 비친 오륙도를 감상한 곳이 바로 왜관 내 사찰 동향사다.  


 



지로우에몽이 남긴 글에는 또 다른 동향사도 하나 나온다. 가을 피안일에 고왜관(두모포왜관)에 성묘를 갔는데 그때 남긴 글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곳이 옛 동향사의 우물이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고왜관은 초량왜관 이전에 있었던 왜관이다. 동향사는 고왜관 시절부터 왜관 내에 확실히 자리잡고 있던 주요한 건축물이었다. 


동향사에선 왜관에서 사망한 사람의 법요나 일상적 법회가 열렸다. 그런데 동향사엔 사찰 역할 외에 중요한 업무가 하나 더 있었는데 외교문서를 다루는 일이었다. 왜관을 통과하는 모든 외교문서를 동향사에서 공식기록으로 작성하고 보관했다. 현재 일본의 국립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양국왕복서등>이 바로 동향사의 기록이다.


 



일본 불교의 전통을 보면 승려가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게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중세 일본 승려는 나라에서 임명하는 관승이었다. 13세기 초가 되어서야  중생 교화를 위해 관승에서 이탈한 둔세승이 일본불교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 불교에서 관승의 전통은 강하게 남았던 거 같다. 17세기 반기독교 정책을 펼친 막부는 모든 주민이 불교사원에서 기독교신자가 아니라는 증명서를 발급받도록 하면서 불교사원을 지배기관으로 활용했다. 조선과의 외교에서도 승려가 많이 등장하는데 임진왜란 후 기유약조를 교섭한 책임자가 승려 겐소였다.


 



지금의 동향사 터에선 지로우에몽이 봤던 달빛 아래의 오륙도를 볼 수 없다. 빽빽하게 솟아있는 빌딩들이 바다를 가리고 있다. 그나마 백여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근대식 건물과 백산상회를 기념하는 백산기념관이 시야를 가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적색 벽돌의 건물은 일제시대 한성은행 지점 건물이었다고 한다.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https://search.i815.or.kr/Main/Main.jsp

 


백산상회는 상해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세운 무역상이었다. 일본인들이  거주 지역에 과감히 민족계 무역상을 설립하고 1914년부터 1928년까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것이다. 김구 선생이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운동자금 6할이 백산의 손을 통해 나왔다”고 할 정도로 백산상회의 자금은 독립운동의 젖줄이었다.4


 

건물이 철거되고 공터만 남은 부산유치원

 


동향사 터 뒤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유치원인 부산유치원(일본인 전용) 터가 있다. 초량왜관 건물터는 아니지만 이곳은 초량왜관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곳 될뻔했다. 부산 초량왜관의 자료전시관 최적 후보지로 꼽혔기 때문이다. 초량왜관이 있었던 구도심에서 이만한 공터를 찾기가 어려운 게 이곳을 최적지로 꼽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이제 사라졌다. 지난 11월 11일 부산시의회가 이 곳에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건립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건립' 시의회 기재위 통과

 

2008년 중구청이 해당 지역에 숙박시설을 허가한 바 있다. 당시 인근 4개 모텔 외에 또 다른 모텔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과 초량왜관 복원을 염원하는 시민들과 전문가의 반대로 숙박시설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불씨를 초량왜관으로 옮겨붙이진 못했다.


"옛 부산유치원 터 모텔건립 막아야"

 

초량왜관은 현재 건물은 물론 그 터조차 찾을 수 없다. 문헌과 표지석에서만 확인될뿐이다. 초량왜관은 언제 쯤 그 실체를 담아낼 공간을 가질 수 있을까? 응답하라 초량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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