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왜관엔 문이 3개 있었다. 연향대청에 잔치가 베풀어질 때 일본 사신들만 출입하는 연향문이 북쪽에, 죽은 일본인의 시신을 운반하는 수문(水門 )이 남쪽에, 초량왜관의 주요 출입문인 수문이 동쪽에 있었다. 초량왜관을 노래했던 지로우에몽은 수문(守門 )을 나서면 오른쪽엔 오륙도 왼쪽엔 산이 보인다고 했고 2정(약 216미터) 정도 걸어가면 자그마한 언덕들이 나온다고 했다. 변박의 초량왜관도는 지로우에몽의 묘사와 일치한다. 돌담을 꺽어 만든 수문(守門)의 오른쪽은 바다고 왼쪽은 산이다. 수문(守門)에서 해변을 따라 북쪽의 좀 떨어진 곳에는 언덕들이 보인다. 초량왜관은 동래부에서 발행하는 첩문을 가진 자가 아니면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일본인은 수문(守門) 밖을 나갈 수 있었지만 제한된 구역이었고 석양 무렵에..
1950년대 중학교 교과서입니다. 국가생활이란 제목으로 봐서 아마 지금의 사회교과서 쯤 되는 것 같습니다. 부산구덕운동장 앞에 주말마다 골동품 장터가 열리는데 몇년 전 거기서 샀던 책입니다. 단기 4289년도인데, 서기로 환산하면 1956년입니다. 전쟁이 끝난지 3년째 되는 해이고 남북이 극단적으로 대치하던 때죠. 역시 교과서 내용은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맹공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유를 들면서 성서의 내용을 인용했네요.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라서 그런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이 책엔 기독교 관련한 인용이 여러개 있지만 다른 종교는 하나도 없습니다. 당시 공산당 당수 박헌영이 한국이 "그(소련) 연방에 포함되는 것이 좋지 않는가?"라고 한 말을 두고 공산주..
최근 부산역 입구가 바뀌었습니다. 앞쪽으로 나온 계단을 지금은 옆으로 돌렸습니다. 과거부터 찾아보니 부산역 입구는 짧아짐의 역사였더군요. 1994년 찍은 사진입니다. 에스컬레이터 없이 완만한 경사로입니다. 2016년 모습입니다.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만들어졌는데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면서 계단 경사가 가팔라졌습니다. 2017년 현재입니다. 앞으로 나왔던 계단을 옆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2018년 1월 예상되는 모습입니다. 부산역 입구에 계단식으로 정원이 조성된 거 같습니다.
동래역 앞에 있는 명륜1번가 구조물이 사라졌습니다. 2016년 1월에 설치되었던 명륜1번가는 11개월만인 2016년 12월에 동래역 신평 방향 육교 아래 이전되었습니다. 그동안 부산공감은 명륜1번가 구조물 문제를 여러번 포스팅했는데요. 인도와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통행과 승하차를 방해하는 조형물에 많은 시민들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명륜1번가 구조물은 부산공만에만 올라온 게 아닙니다. 지역 언론에서도 다뤘고 jtbc뉴스에서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결국 구청이 손을 들었고 결국 이전하게 된 것입니다. 아래 이미지들은 부산공감에 올렸던 카드뉴스와 공사 전후와 이전된 명륜1번가 모습 그리고 jtbc가 보도한 취재 영상입니다. 좁은 인도 위 대형 조형물 이전(국제신문)
학교 급식 노동은 정말 몇 일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일까? 밥만 하면 되는 일일까? 실제 일하고 있는 급식 노동자들을 만나 이언주 의원이 쏟은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급식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절대 밥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급식노동자에게 들은 급식노동은 업무에 대한 숙련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필요한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특히 폭염의 계절에 급식노동은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 그 이상이었다. 영상 속 급식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에서 나온 생생한 언어를 이언주 의원이 꼭 보고 제대로 반성했으면 한다. "옷을 하루에 세벌 네벌씩 갈아입습니다. 장화 안에 물이 부으면 한 컵 넘게 나와요. "식용소금을 섭취해가면서 일해요." "애들 들었을까 부끄러운 거예요. 내 일이 그 ..
이름도 고귀한 / 오륙에 비치는 / 달빛이여동향의 종을 치는 / 신을 맞이하는 / 사람일세 이 시는 1806년 초량왜관에 머물렀던 오가와 지로우에몽이 지은 단가다. 지로우에몽은 8개월 동안 초량왜관 머물면서 175수의 시를 썼다. 지로우에몽이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달빛에 비친 오륙도를 감상한 곳이 바로 왜관 내 사찰 동향사다. 지로우에몽이 남긴 글에는 또 다른 동향사도 하나 나온다. 가을 피안일에 고왜관(두모포왜관)에 성묘를 갔는데 그때 남긴 글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곳이 옛 동향사의 우물이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고왜관은 초량왜관 이전에 있었던 왜관이다. 동향사는 고왜관 시절부터 왜관 내에 확실히 자리잡고 있던 주요한 건축물이었다. 동향사에선 왜관에서 사망한 사람의 법요나 일상적 법회가 열..
말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마필관리사다. 말을 마사지하고 챙기는 사람이니까 당연하다. 그러나 마사회에서 마필관리사는 하청의 하청에 속한 다단계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난 5월 27일 인간적인 대접도 못받는 이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싸우다 한 노동자가 자신을 목숨을 던지고 말았다. 부산경남경마공원 마필관리사 고 박경근 씨의 어머니는 절규한다. 아들이 사랑하는 마필관리사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힘이 들어도 참아봐라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어머니 너무 힘들고 너무 인간적으로 대접 안해주고 심지어는 우리 아들이 이런 소리를 해요. 우리는 말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일로 한다고." "내 아들은 죽었지만 앞으로 내 아들 시신을 가지고 1년이 가든 2년이 가든 내 아들과 끝까지 싸우고 그리고 우리 아이가..
영도 드가는데 다리가 딱. 아~ 망했어요 학교... 출구가 사라졌어요. 3번 출구로 나오란 사람 누구야? 이거 누가 먼저 놨어? 광복로 베리놨다. 부산진구 올해도 쓰레기 전쟁 하나요? 가덕도 신공항은 이제 망한 건가요? 2013년 6월 폐장하고 6성급 캠팬스키 호텔이 들어선다고 하죠. 있었는지도 모르는 서면 롯데월드. 제대로 영업도 못한 스노우캐슬. 주차장 직행하는 정문에 욕바가지 얻어먹었죠. 정문 옆엔 상가까지 있고. 정문 다시 바꾼다는 말은 있었는데 언제 될런지... 망했어요. 1992년 롯데 우승 모습. 헹가레 하는 이분들 최소 50세.
일본의 주유소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입니다. 7시부터 17시 사이에 6시간 이상 일하는 조건에 시급이 1100엔입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1,000원입니다. 최소 시간인 6시간만 채워도 하루 6만6천원을 벌 수 있습니다. 이 일당으로 한달 20일만 일하면 132만원이 됩니다. 주유소만 그럴까요? 그런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여기저기 걸린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의 시급이 크게 차이가 나지않았습니다. 요리보조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공고엔 시급이 1000엔으로 적혀있습니다. 주유소보다 100엔 적을 뿐입니다. 100엔 적은 대신 교통비를 지급하고 식사도 제공하는 등 조건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필자가 도쿄에서 2009년에 찍은 것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2009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40..
지난 7월 14일 침례병원이 파산했습니다. 그런데 침례병원은 이렇게 파산되고 청산되도로 내버려두기엔 그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첫째. 침례병원은 한국 의료서비스가 부재하던 1950년대 미국 종교재단의 원조로 지어진 병원입니다. 한국이 어려운 시기 부산시민의 의료를 담당했던 침례병원이 그냥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둘째, 침례병원이 파산하면 지역 의료서비스의 큰 공백이 발생합니다. 금정구와 양산 덕계 지역의 수십만 주민들의 응급 수요를 담당할 병원이 사라지게 됩니다. 침례병원의 파산은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파산선고가 나기 2일 전 침례병원에서 주재범 침례병원 노조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침례병원이 파산에 이르게 된 과정과 현재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 등에 대..
1990년 일본은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궁중만찬회에서 한일우호를 강조하며 일본의 역사적 인물 한 명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 말 때문에 일본에선 난리가 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말한 그 이름을 아는 일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언급한 인물은 300년 전 조선외교전문가로 활동한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다. 호슈는 1702년부터 조선을 드나들었는데 1728년에는 실무외교에서는 최고의 직위라 할 수 있는 재판(왜)의 자격으로 조선에 왔다. 유학자가 외교관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조선과의 외교를 전담했던 쓰시마번이 유학의 나라 조선과의 외교를 유학자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외교관으로서 호슈의 사상은 지금봐도 놀랄 정도로 객관적이고 세련됐다. 호슈는 임진왜란을 대의명분이 없는 살상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