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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이 말하는 부산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지방자치


- 재첩국 장사를 하신 어머니

- 사법시험 준비하는 선배 수첩 속 노무현 사진

- 지방자치의 성과 벡스코와 미래의 불씨 신공항

- 가장 좋은 직장 상사는 답을 주는 사람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을 만났습니다. 정경진 전 부시장은 부산상고 출신으로 행정고시 합격해서 부산시 공무원으로 20여년을 지낸 분입니다. 부산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분 중 한 분이죠. 기대대로 부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재첩으로 풀어낸 부산의 과거, 불씨로 엮은 부산의 현재와 미래는 흥미롭고 신선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부산시 공무원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은 직장 상사로 뽑힌 이유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정경진 전 부시장은 업무 결정을 잘해줬기 때문인 거 같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할 듯합니다. 



부산 어디에서 자라셨습니까?


감전동입니다. 우리 어릴 때 사상공단은 전부 갈대밭이고 미나리밭이었어요. 사상역 뒤에 큰 산이 있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 그 산을 깍아 사상공단 지역을 매립했어요. 감전동에서 괘법동 끝까지 큰 산이었는데 그 산을 몽땅 들어내 도시를 만들었죠.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제일 기억 남는 게 재첩입니다. 그땐 진짜 물이 깨끗해서 낙동강에 재첩이 자글자글했거든요. 초등학생도 한바가지 잡아서 갈 정도였죠. 마을에 공무원이 오면 귀한 손님 대접한다고 물도 안 붇고 삶아낸 진국을 그대로 줬죠. 동네 사람들이 재첩국 장사를 많이 했습니다.  


부산의 새벽을 깨우던 ‘재첩국 사이소’ 목소리의 한 분이 혹시 부모님이셨나요?


어머니도 재첩국 장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이고 다니지는 않으시고 부전시장에 팔러 다니셨죠. 새벽에 나가시면 점심 먹기 전에 돌아오시거든요. 그러면 부전시장에서 과일이나 떡 같은 걸 사오는데 제가 그걸 눈이 빠져라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해요. 



사진 출처 : 관광공사



지금도 재첩 자주 드시나요? 


재첩 엄청나게 좋아하죠. 동아대(부민캠퍼스) 강의를 다니는데 학교 갈 때마다 그 앞에 재첩국집을 찾습니다. 지하철 토성역 근처에도 저렴하고 맛있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 하동 재첩을 주문해서 집에서 먹기도 하고요. 


낙동강 재첩은 다시 먹을 수 있을까요?


환경단체 대표들 만난 자리에서 낙동강 살아보신 분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더군요. 제가 그랬습니다. ‘낙동강 복원의 기준은 재첩이다. 재첩이 살면 그게 바로 낙동강이 살아난 거다.’ 재첩을 살리려면 낙동강 하구둑 당연히 없애야 합니다. 재첩은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자라요. 


재첩 말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음식이 있습니까? 


부산상고 다닐 때 칼국수는 개근상 받을 정도로 많이 먹었습니다. 지금 서면 롯데백화점이 당시 부산상고였어요. 하교하면 서면시장에서 칼국수 먹고 도서관에 공부하러 갔죠. 당지 ‘자야집’이라는 델 주로 갔어요. 아주 맛있었죠. 근처에 돼지국밥집도 있었는데 당시엔 국밥이 비싼 음식이었어요. 대학 안 가고 은행 취직할려고 상고로 진학한 형편에 국밥 먹을 여유는 없었죠. 줄창 칼국수만 먹었습니다. 



부산상고(현 서면 롯데백화점 부지)



부산상고 출신인데 행정고시는 어떻게 도전하게 된 겁니까?


78년 졸업하고 한국은행 입사했습니다. 한국은행이 상고 졸업생들에겐 서울대입니다. 보통 한 학년에 3~4명 들어가는데 제 졸업 성적이 공동 수석이었거든요. 그렇게 2년을 다니다 꿈이 커졌죠. 그런데 주변에서 전부 말리더군요. 심지어 대구 자형이 그 소식 듣고 부산까지 와서 말렸죠. 딱 한 사람 제 직장 상사 대리가 힘을 실어주더군요. 부산상고 선배였는데 그만둔다니까 뜻이 있으면 해보라고 격려해주셨죠. 


부산상고에서 고시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나요? 


많지는 않아도 더러는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코스였죠. 노무현 대통령 사법시험 합격했을 때 제가 1학년 재학 중이었습니다. 학교 게시판에 노무현 대통령 이름이 커다랗게 붙었죠. 그런 거 보면 저도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꿈을 키운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배종근 씨라고 사법시험 준비하는 선배가 한 분 계셨는데 하루는 이 분이 자기 수첩을 보여주더라고요. 거기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 있었어요. 잠올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본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합격기에도 그걸 적어놨어요. 부산상고 동문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하나의 롤모델이었죠. 





부산시엔 언제부터 일하시게 되었습니까?


경남도청 사무관으로 출발해서 국무총리실과 청와대, 행자부 등을 거쳐 96년 부산에 왔습니다. 그때 문정수 시장님이셨죠. 통상진흥과를 맡았는데 새로 생긴 부서였어요. 경제 관련 부서가 당시 지역에선 이례적이었죠. 지금은 부산시 조직 1/3이 경제 관련 조직입니다. 


경제 관련 조직이 늘어난 이유는 뭐죠? 


민선 이전의 자치단체 업무는 규제 관련 업무입니다. 진흥보다는 규제 행정이 자치단체 주된 업무였죠. 지방자치 시대에 지역 경쟁력이 중요해지면서 행정의 역할이 바뀌다 보니 경제 관련 부서가 늘어나게 된 겁니다.


지방자치제가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십니까?


단체장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옛날에는 대통령만 선출하고 시도지사는 임명을 하니까 단체장들이 위 사람 즉 대통령 눈치만 봤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시민이 구청장이나 시장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니까 시민 중심의 행정체계로 바뀌었죠. 민원실이 강화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만약 지방자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중앙 부처의 지시가 모든 지자체에 똑같이 내려갔겠죠. 지역 특성이 있기 때문에 부산에서 하는 일과 광주에서 하는 일, 강원도에서 하는 일은 달라야 하거든요.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사업이 이루어져야 발전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성이 전체도 발전시킵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를 안 하면 전국이 똑같은 일을 해야해요. 그건 엄청난 비효율이죠.   


지방자치권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때가 있나요?


저축은행 사태 터졌을 때 부산이 난리가 났었죠. 보상을 못받는 200분 정도가 시청에 들어오셨어요. 누군가 응대를 해야하는데 담당 부서가 없더라구요. 저축은행은 기재부에서 하는데 자치단체는 권한은 없고 통계숫자만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제가 당시 경제산업본부장이었는데 경제니까 내려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만나 부산시는 이 사건을 콘트롤할 권한이 없다고 했죠. 그러니까 한 분이 그래요. “부산시장은 부산시민의 아버지 아닙니까? 자식들이 이렇게 어려움에 처했는데 나몰라라 하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뭐라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자치권이 약해서 공무원들이 느끼는 현실적 문제점은?


부산시 간부와 시장이 1월부터 중앙의 국비 확보하려고 전략회의 하면서 여기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재정분권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면 이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죠. 중앙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지역주민의 요구 등 다른 업무는 신경을 못쓰게 됩니다.   


자치권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현재 지방분권의 근거가 헌법에 두 줄밖에 없습니다. ‘지방분권을 한다. 지방자치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지방자치 사항을 법률에 다 위임해버리니까 국회의원들이 맘대로 자치권을 훼손할 수 있어요. 자치권 관련 사항을 헌법에 다 넣어야 합니다. 지역의 행정권, 입법권, 재정권을 헌법에 다 넣으면 그걸 훼손하는 법을 국회의원들이 제정하지 못합니다. 이게 진정한 지방분권 개혁이죠. 


부산에서 지방자치 성과를 하나 들어주신다면.


벡스코죠. 2001년 개장했는데 2년만에 흑자내고 현재는 한 해 1조 4천억 생산 유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2012년 전시장이 부족해서 옆에 새로 지었는데 그것도 부족해 제 2벡스코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벡스코에서 행사가 열리면 해운대 호텔에 방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지방에선 불모지나 다름 없는 전시컨벤션 산업을 부산에 과감하게 추진했고 그게 성공해서 마이스산업이 부산의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만약 중앙의 지시만 받았다면, 중앙만 처다봤더라면 부산이 이런 산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을까요?  




부산 벡스코는 지금 '대박 중'..굴뚝없는 산업 성공 스토리(한겨레신문)



생소한 전시컨벤션산업을 부산에 도입하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벡스코가 착공할 무렵에 IMF가 터졌어요. 벡스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죠. ‘전시컨벤션산업이 부산에서 되겠느냐?’ ‘이렇게 큰 건물이 돈 먹는 하마가 되지 않겠느냐?’ 이런 우려가 팽배했죠. 그 즈음에 안상영 시장이 당선되었는데 벡스코에 대해 확답을 안해줬어요. 제가 당시 담당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꼭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선자에게 보고할 때 이렇게 얘기했어요. “시장님 IMF가 와서 부산경제가 힘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미래의 불씨는 살려둬야 합니다. 벡스코가 바로 그 불씨입니다.” 나중에 시장님에게 결제 받으러 가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 그러시더군요. 소신껏 추진하라는 시그널이었죠. 


지금 부산에 벡스코 같은 미래를 위한 불씨가 될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신공항입니다. 지금 어렵다고 대충 묻어가는 식으로 만들면 안됩니다. 부산의 잠재력과 나아가 대한민국 먹거리까지 생각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벡스코 처음 만들 때 누가 부산에 전시하러 오겠냐 했지만 그것도 모자라 제 2벡스코 짓잖아요. 동남아 여행 갔다 부산 올려면 밤새 기다립니다. 그게 그 공항 문제가 아니고 부산 김해공항이 24시간 운행이 안되니까 그런 거거든요. 24시간 운행이 안되는 공항 인프라 위에 어떻게 부산의 미래를 그립니까? 부산의 미래와 위상을 갉아먹는 공항은 안됩니다. 적당히 타협해서 지으면 그건 부산의 미래 불씨를 꺼트리는 겁니다.





같이 일하고 싶은 직장상사에 뽑혔는데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왜 그런지 궁금해요. 역지사지라고 나는 과연 어떤 상사와 근무하고 싶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제가 가장 같이 근무하고 싶은 사람은 결정을 해주는 사람이예요. 일하다 보면 고민거리가 생기고 그 고민들이 계속 스트레스를 주거든요. 그러다 도저히 안되면 상사한테 가서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데 그때 이래라 저래라 답을 해주는 상사가 제일 좋더라구요. 결정을 해준다는 건 같이 책임을 져준다는 거거든요. 나도 직원들이 물으면 방향을 정해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걸 잘 봐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많이 머라카고 아주 엄격해요. 직원들이 잘해준다고 좋아하는 건 결코 아닌 거 같습니다. 고민꺼리를 들고 갔는데 ‘생각해봐라’ 이러면 또 술한 잔 더 묵게 되지요. 그래놓고 나중에 잘못되면 ‘이 사람아 단디 하라 했잖아’ 이러면 답답하지요. 


마지막으로 부산은 어떤 도시입니까? 


인구 350만명의 제 2의 도시고, 세계 5위 항만 도시고, 아시아 최대 국제영화제가 있고, 부마항쟁 등 민주화 성지고, 대통령을 3명이나 배출했고, 좁고 길게 생겼고, 터널이 많고, 물가가 싸고, 싱싱한 활어회가 넘치고.... 제 삶에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는 것들, 정말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들 그게 제겐 부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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